그들의 인권

 

결국 그렇게 두 소녀는 희생되고 말았다.

짐심으로 두 어린이의 명복을 빌어본다.

 

파렴치범에게 인권은 있는가?

안양 초등학생 살해 사건을 계기로 이 사회가 잔혹 범죄자의 인권을 어디까지 보장 해 주어야 할 것인가에 대한 논의가 일어나고 있다. 물론 전반적인 분위기는 이러한 범죄자에 대한 양형 기준을 대폭 높이는 것은 물론 신분 공개 등 추가적 조치를 취해야 한다는 쪽이 압도적으로 우세하다. 피해자 가족과의 접촉은 물론 얼굴 노출조차 허용하지 않는 경찰에게 비난을 퍼 붇는 것이 요즘의 민심이다.

설상 가상이랄까?

다행이 미수에 그치기는 했지만 일산에서 벌어진 또 다른  사건 때문에 이러한 사회적 분위기는 되돌릴 수 없을 만큼 강력하다. 결국 정부도 법률 개정을 통해 처벌 수위를 강화 할 모양이다.

 

사회적 동기화의 위험성

이러한 범죄자에 대한 극도의 대중적 분노는 범죄 행위 자체를 볼 때 충분히 이해 될 수 있는 감정이다. 일부 정치인들은 사실상 중단된 사형의 집행을 요구하기에 이르렀다. 자칫, 천부인권이니 하며 피의자의 인권을 주장 했다가는 잠재적 성 범죄자로 몰릴 지경이다.

그러나 늘 그래 왔듯이 이렇게 온 사회가 한 곳으로 쏠리는 모습을 보여 줄 때, 그 내용과 상관 없이 이견을 배척하는 사회적 경향이 두드러지게 될 때 우리는 더욱 더 냉정하게 중용의 가치를 되새겨야 할 것이다.

사회적 동질성과 동시에 중요하게 확보되어야 할 가치 중 하나는 바로 다양성이다. 생물종 혹은 유전자의 다양성이 확보되지 않은 생태계가 위험하듯이 사고의 다양성이 보장받지 못하는 사회는 공멸하고 만다. 물론 아동 성범죄자에 대한 사회적 분노 자체애 대한 이견을 다양성으로 인정하자는 것은 아니다. 내가 여기서 주자하는 것은 범죄자의 인권이 존재한다는 가치와 주장을 인정하자는 것을 뜻한다. 범죄자가 법률에 의해 처벌받는 것과는 다른 문제이다.

붐비는 지하철이나 버스에서 본인의 의도와는 전혀 상관 없이 성추행범으로 오인받는 경우를 많은 남성들은 경험했을 것이다. 평정심을 잃은 사회적 분위기가 만들어내는 피해자는 얼마든지 있다.

 

어떠한 사회에서 살 것인가?

진중권은 이렇게 말 한다.

사형제의 문제는 사적인 복수의 문제가 아니라, 범죄에 대한 공적인 대책의 문제다. 그것은 뜨거운 감정적 흥분이 아니라 차가운 이성적 논의로 접근해야 할 문제다. (전문)

 

오해 마시라.

나도 딸만 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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